부사공 임목 전서공 임난수의 둘째 아들이다.
임목은 36세 음사로 보령의 비인 감무를 지냈다.
또한 48세에 생원 진사 양시에 급제하여 평양서윤, 함주통판, 홍주판관을 지냈다.
홍주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려 교화시켰다. 59세 음죽현감으로 재직 중 향교를 지어 윤리를 밝게 하였고 죽남루를 지었으며 정이오가 음죽향교기와 죽남루기를 지었다. 그후 함주통판을 지냈는데 이때 함주목사로 있던 남금과 친분을 맺어 후에 독락정을 지었을 때 그의 아들 남수문이 독락정를 지었다.
66세(1436년) 양양도호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푸니 고을에 청덕선정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관직에서 물러나 부모님이 살고 계신 연기군 남면 양화리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독락정을 지어 놓고 당시 직제학인 남수문에게 부탁하여 독락정기를 지었다.
78세(1448년) 11월1일 돌아가시니, 연기 서촌 월화고개(현 공주시 장기면 제천리)에 묘을 만들었다 이곳에 있는 사당을 양산제라 부른다.(현 부사공 임목의 묘 정부시책으로 전의면 다방리 이전 되었다)
임목은 36세 음사로 보령의 비인 감무를 지냈다.
또한 48세에 생원 진사 양시에 급제하여 평양서윤, 함주통판, 홍주판관을 지냈다.
홍주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려 교화시켰다. 59세 음죽현감으로 재직 중 향교를 지어 윤리를 밝게 하였고 죽남루를 지었으며 정이오가 음죽향교기와 죽남루기를 지었다. 그후 함주통판을 지냈는데 이때 함주목사로 있던 남금과 친분을 맺어 후에 독락정을 지었을 때 그의 아들 남수문이 독락정를 지었다.
66세(1436년) 양양도호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푸니 고을에 청덕선정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관직에서 물러나 부모님이 살고 계신 연기군 남면 양화리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독락정을 지어 놓고 당시 직제학인 남수문에게 부탁하여 독락정기를 지었다.
78세(1448년) 11월1일 돌아가시니, 연기 서촌 월화고개(현 공주시 장기면 제천리)에 묘을 만들었다 이곳에 있는 사당을 양산제라 부른다.(현 부사공 임목의 묘 정부시책으로 전의면 다방리 이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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